케빈에 대하여


"케빈에 대하여 (We Need to Talk About Kevin)"

 
영화를 보다가 사방을 둘러보니 관객들은 열심히 어미와 한통속이 되어 감정이입하려 애쓰고 있었지만
그 어떤 모성으로도 넘볼 수 없는 아득한 블랙홀이 케빈의 심장이다.
남들의 심장 있을 자리에 케빈은 심장 대신 이유없음을 가지고 있다.
세상의 수 많은 색채들이 그 속에 빨려들면
한때 자신이 가졌던 빛깔을 비참하게 반성하게 될 것이다.
기원을 모른 채 어설픈 기호들 몇을 가지고 이리저리 공글리며 살아온 그대들의 애매한 진정성이여 안녕.
나는 내가 왜 이렇게 살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오.
창밖을 바라보니
노랑 유치원 버스가 지나가네
값싸고 맛있는 오구 쌀피자를 사가는 아빠와 아들이 있고
아름당 금은보석방 네온사인은 대낮에도 반짝이고
런링구입은 아저씨는 그 아래서 담배를 피네
가로수 아래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초등학생 몇이 담배꽁초를 비닐봉다리에 담고 있네
그리고 하마트면 롯데리아 오토바이가 그들을 칠 뻔했지.
더위가 한풀 꺾였는지 문을 열어둔 카페에서는 
이 노래 'amanda mia amore mio'가 붕짝붕짝 흐르네.
케빈에 대하여를 나는 아주 재밌게 봤지.
하지만 어찌 보면 웃겨주시는 영화였네
어미는 감방에 갇힌 케빈의 옷을 꺼내 반듯하게 다리고
케빈은 면회소에서 어미와 포옹도 살짝 했지.
그때 어디서 띵! 하고 면회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던가?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각자 하던 것을 계속 하러 가라는 소리였지.
그리고 어미가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아들이라기보다 아들 행동의 이유였지만
막상 케빈은 기억하지 못해, 어쩌면 그 이유란 게 있었던 것도 같긴 한데...
그나저나 케빈이 동급생 수십 명을 활로 쏴죽이고
제 애비를 죽이고
동생의 눈을 빼먹고 그저 씩 웃었을 뿐인데
어느새 더위는 한풀 꺽이고 
거리의 담배꽁초는 사라지고 오토바이는 안전하게 굴러가고
금은보석방 간판은 어둠속에서 반짝반짝 예쁘게 반짝이네
이따금은 이 투명한 세계에 케빈의 손가락이 들어와
이곳이 수면에 비친 잔상일 뿐임을 일깨우기도 하겠지만
그 물 속으로 얼굴을 쳐박고 낯선 세계를 들여다보려는 이는 어설픈 어미 몇이면 충분할테고
노랑 유치원 버스 원생들은 어여 안전교육을 받아야 할 것이고 
하루 빨라 자라 케빈 엄마에게 빨간 페이트통을 투척해야지.
금기를 넘나들게 하던 피빛 토마토 축제의 토마토들은
축제가 끝나면 깡통에 담겨 슈퍼에 가득하니 구하기도 쉽지.
그에 비해 케빈의 화살은 턱도 없이 부족하지만
영화는 꽤 나에게 위안을 주었고, 세상살이 외로움을 달래주었지.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나갈 때 들려오던 저 세계 관객들의 반응은 나를 슬프게 했지.

당신들이 케빈의 어미가 아닌 것처럼, 내가 케빈도 아니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