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 여행 둘째 편) 나는 간신히 깨닫지 않는다

 

 

  

  

  

 

 

 

가을이 깊어가지만, 여전히 봄볕이 눈부신 곳으로 간다. 그곳은 경북 춘양(春陽)’

춘양은 영동선 일대에서 꽤 큰 마을이다. 장날이면 산간오지의 할매들이 첫 기차를 타고 다 이곳으로 모인다. 목욕도 하고 병원 들러 관절염 치료도 하고 장도 보고 칼국수도 한 그릇 먹고 다시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춘양에는 꽤 다방이 많다. 할배들도 그곳에 들러 커피 한잔 마시고 간다. 오늘은 버스를 타고 봉화군과 영양군의 경계인 남회룡까지 가서 산 깊은 곳을 걸을 생각이다. 버스가 시간여 넘게 남아 터미널 앞 다방에 들어갔다. 마담은 없고 햇볕이 잘 드는 다방 한쪽에는 빨간 고추들이 널려있다. 창가에 앉아 가방을 정리하고 있자니 중년의 마담이 들어온다. 커피 한잔 주세요. 커피 값은 이천 원인데 마담은 요구르트와 따끈한 찐 달걀도 함께 내온다. 혼자라서 또 배달 나가야 한다며 미안하다고, 편안히 마시고 있으라고 한다. 나는 다시 낡은 시골 다방에 홀로 남겨져 가을볕과 봄볕을 번갈아 바라본다.

 

버스는 낙동강 굽이를 휘돌아 남회룡 분교 앞에 멈춰 섰다. 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탔는데 종점까지 가는 이는 나밖에 없다. 조금 걷다보니 포장도로가 끝나고 부드러운 흙길이 이어진다. 길 양쪽에는 낙엽송들이 우람차게 솟아있고 한쪽에는 맑은 실개천이 흐른다. 세상은 언제부터 이렇게 고요했나. 나비 몇이 날아오른다. 이 외진 곳에도 곳곳에 고추들이 익어가고 배추들이 커간다. 하지만 이 작물들을 재배하는 이들은 모두 어디에 사는 걸까. 어쩌다 동떨어져 집이 한두 채 있을 뿐이다. 걷다보니 빗방울이 툭툭 떨어진다. 비옷을 꺼내 입는다. 세상에는 이제 고요함이 사라졌다고 여긴 적이 있지만 그 얼마나 경솔했나 싶다. 이 길을 홀로 걷다보면 누구나 고요함 속을 걷다가, 또 가끔은 저 세상을 걸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길가에는 달콤 쌉싸름한 향기가 풍겨온다. 고개 들어 둘러보니, 운무 속에서 온통 보랏빛으로 당귀 꽃들이 환하다.

 

텐트를 가져오면 좋았을 것을!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쉬움이 넘친다. 풍경들을 마음에 더 담아가고 싶은 안달이 일지만, 한 움큼도 가져갈 수 없다, 언제부턴가 그냥 걷는다. 차라리 이 고운 빛들도 다 색()일 뿐이라는 짐짓 허무한 마음으로, 이내 사라질 듯 아름다운 풍경 속을 타박타박 걷는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 그렇듯 이 길의 아름다움을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없다. 이 순간 이 길을 관통하는 자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좁은 통로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다행히도 이 아름다운 길은 꽤 길게 이어졌다. 종일 그 길을 걷고서야 영양터널을 만났다. 봉화군과 영양군의 경계 위로 문득 쏟아져 나온 기분이 든다. 터널을 지나니 오락가락 하던 비가 굵어진다. 서둘러 영양군 쪽으로 향해본다.

 

비가 점점 거세지더니 급기야 쏟아진다. 길 한 가운데서 어디 딱히 비를 피할 곳이 없다. 조금 전까지 그 여유롭던 마음은 이내 사라지고 비에 젖은 양말과 신발이 무겁기만 하다. 다음 마을까지는 얼마나 더 걸어야 할까? 트럭 한 대가 멈춰서고 창문이 내려졌다. 서로 눈을 마주칠 뿐 타라는 말도 태워달라는 말도 없는데 빗줄기만 세차가 아스팔트 위로 쏟아졌다.

몇 번을 머뭇거리고서야 트럭 운전자가 먼저 물어왔다.

어디까지 가세요?”

글쎄 나는 어디까지 가야는 걸까. 머뭇거리는 나를 보더니 그는 자신이 가는 곳까지 태워다 준다고 했다. 송이를 따는 사람이었다. 산 하나를 계약하고 1주일 전부터 서울에서 내려와 송이가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차창에 쏟아지는 빗줄기가 너무 세서,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트럭은 기어가고 있다. 운전하느라 온통 집중해 있던 그가 문득 말했다.

특별히 일이 없다면 송이 따는 일을 도와줘도 됩니다.”

도와줘도 된다는 그의 어법은 사실 좀 이상한 것이었지만 그 말이 사려 깊게 느껴졌다. 그도 정처 없던 시절이 있었겠지. 비가 쏟아지는 차 안은 아늑했다. 한철 그를 도와줘도 되겠다 싶었지만 나는 왠지 더 걸어야할 것만 같았다. 대답은 하지 못 했다.

뭐 하러 걸으세요?”

그의 질문은 대답하기 어렵다. 나는 용도 없이 걷고 있다. 그의 숙소가 있다는 마을 앞에 왔을 때 빗발은 잠잠해졌다. 차에서 내리면서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그도 따라 내리더니 나에게 악수를 하며 건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질 때까지 걸었더니 영양군 수비면 발리리에 이른다. 꽤 오르막을 올랐는데 읍내에 들어서니 넓고 평평한 풍경이 펼쳐졌다. 하늘 아래 첫 동네라더니 공기다 청량하다. 나는 핸드폰으로 도로 표지판을 찍어 친구에게 보낸다. <나 발리에 왔어. 이곳은 열대우림 같은 비가 내려.> 식당에 들어가 벽에 붙은 메뉴를 살피자니, 주인이 오늘은 주물럭만 된다고 한다. 전근 가는 선생님이 있어서 오늘은 가게가 통째로 예약 됐다고 했다. 떠나는 사람과 떠나보내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으며, 처마 밑 평상에 앉아 밥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물이 질퍽거리는 신발과 양말을 벗었더니 발바닥에 물집이 잡혀 허옇게 부풀어있다. 가방에서 수건을 꺼내 발을 닦는다. 다시 빗줄기가 거세진다. 처마에서 폭포가 쏟아진다. 뜨거운 된장국을 들이키면서 주물럭이 익기를 기다린다. 지글지글 소리에 김이 모락모락 오른다. 공짜로 먹는 것도 아닌데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배를 채우고 이 마을의 유일한 숙소라는 한일여인숙에 찾아갔다. 비에 쫄딱 젖어 들어가는데 주인 여자가 수건부터 꺼내들고 맞아준다. 젖은 옷들을 처마 밑에 걸어두고 방문을 활짝 열고 빗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피곤해서 금세 골아 떨어졌는데 한밤중에 깨었다. 어느새 비는 멎어있었다. 하지만 방에는 모기가 가득하다. 몇 시간 만에 너무 많이 물렸다. 도저히 다시 잠들 수가 없어 산책을 나갔다. 기온이 뚝 떨어졌다. 문득 가을벌레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조금 더 걸으니 백암 온천이고 길은 동해안 평해로 이어졌다. 가을볕 치고는 무척 따갑다. 바다를 만난 게 반갑기보다는 한적한 내륙 산길이 아쉽게만 느껴졌다. 부족한 잠을 채울 요량으로 동해시까지 가는 버스를 탔다. 7번 국도변의 여러 곳을 들러 가려면 4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다. 날은 더운데 버스의 에어컨이 영 신통치 않다. 밤잠을 설치고 탄 그 버스에서 오락가락 계속 꿈을 꾸다 동해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가보고 싶은 마을이 있었다. 백복령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백복령 전 마지막 가게라는 곳에서 물을 넉넉히 사서 가방에 넣고 오후 내내 걸었지만 백복령은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다. 무모함을 탓하며 길을 재촉하는데 뜻하지 않게 시골버스 한 대 멈춰 서줬다. 인가 없는 이 길에 버스가 다닐 줄은 몰랐다. 어린 소녀와 등산복을 입은 젊은 엄마만이 버스에 타고 있었다. 저 모녀는 아빠도 없이 어디로 여행을 가나. 백복령을 넘으면 이제 정선군이다. 노을빛이 백복령 아랫마을들을 오렌지 빛으로 물들인다. ‘도전리라는 마을이 저 아래 어디 있다. 어느 해 겨울, 눈에 길이 막혀 저 마을에서 하룻밤을 청한 적이 있다. 할머니 혼자 사는 다 기울어져가는 집이었다. 군불 넣는 방이 딱 하나라서 한 방에서 할머니와 잤던 적이 있다. 백복령에 내려서서 노을 속에 잠겨있고 싶었지만 이 마지막 버스에서 내리면 여러모로 곤란해질 터라, 일단 종점인 임계까지 갔다. 모녀는 그곳에서 이어지는 마지막 정선 가는 버스를 타고, 나는 내일 도전리에 다시 가볼 요량으로 임계에 남았다. 오늘이 장날이었는지 장돌뱅이 몇이 천막을 거두고 있었다. 찐 옥수수 한 봉지를 사서 장터 한 쪽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술에 취한 사내 하나가 길바닥에 너부러져 있다. 어디선가는 다툼이 일어 험한 말들이 오가고 있다. 어둠이 점점 내려오고 있다. 눈앞의 풍경들이 정말 그저 풍경들인 것처럼 나는 한쪽에 조용히 앉아있다. 내일이 올까 싶다.

 

내일은 왔다. 하지만 도전리에는 내 기억 속의 그 할매 집이 없었다. 무너진 흔적도 없었다. 그 어디쯤에 새 집이 들어서 있었다. 귀농했다는 젊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나는 잠시 그 집 앞에 앉아 있다가 아우라지 여량 땅으로 향했다. 새 길이 뚫려서 옛길은 한적했다. 붉은 수수가 얼굴 만하게 영글어서 탐스럽다. 콩잎들도 이제 물기가 빠져서 낙엽처럼 바람에 펄럭인다. 이럴 때 콩잎 장아찌를 담으면 부드럽고 맛있다. 깻잎 장아찌는 한 장 한 장 떼어내기 어려워 혼자 사는 사람이 먹기에는 적당치 않지만, 콩잎은 퍼슬퍼슬 잘 떨어져서 혼자 먹기에도 좋다. 강물은 굽이굽이 돌고 나는 혼자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혹은 심심하게 걷기도 하고 또 때로는 허우적허우적 걷기도 했다. 걷다가 누군가에게 머루 송이를 건네받기도 했고, 사과 한 알을 얻기도 했다. 물집들은 아무렇게나 터지고 했지만, 그냥 터져라 하고 걸어, 여량 땅에 도착했다. 흰 우유를 하나 사먹고 서둘러 다시 임도로 접어들었다. 서울에서 막차를 타고 정선으로 내려온다는 친구 때문이다. 정선까지는 멀어서 갈 수가 없고, 그렇다고 밤중에 정선에서 여량까지 올 수 있는 차편도 없어서 중간인 나전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산길에 접어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방이 어두워졌다. 호젓할 거라 생각했는데 여기저기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서 무서움증이 일었다. 서둘러 걷는데 갑자기 풀숲에서 시커먼 동물 하나가 뛰쳐나왔다. 놀라 자빠지는 바람에 랜턴을 들고 있던 손이 땅바닥에 찍혀 얼얼하다. 멧돼지인 줄 알았는데 고라니다. 녀석은 달려가다 말고 저 앞에 서서 이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어디쯤인지 물었다. 곧 정선에 도착하니 나전역까지 가면 밤 10시는 되겠다고 했다. 나도 부지런히 걸으면 그 즈음 나전역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안반데기로 향했다. 안반데기는 해발 1100M, 피덕령의 동쪽 산비탈 마을이다. 이 계절에 가면 산 전체가 배추밭이다. 우리는 오후 늦게 안반데기 입구에 도착한 터라 땀을 뻘뻘 흘리며 부지런히 산길을 올랐다. 걷다가 잠시 멈춰서면 금세 땀이 식고 몸에 한기가 밀려왔다. 이 지역은 한 계절은 앞서가는 것 같다. 고랭지 채소밭에 올 때마다 이 많은 배추들이 물 한 방울 주지 않고도 이렇게 잘 자란다는 것에 놀란다. 이 배추들은 구름과 안개의 습기를 먹고 산다. 우리가 그곳에 올랐을 때도 운무가 가득했다. 가방에 있는 옷가지들을 죄다 꺼내 입었다. 날이 쌀쌀해서 입김이 나왔다. 깊은 산골, 몇 채 안 되는 집들의 불빛이 안개에 젖어 글썽인다. 이곳에도 숙박시설이 있었지만 도대체 잠을 이루고 싶지 않다. 걷는 일도 중독이 있는지 자꾸만 걷고 싶다. 날은 이미 깜깜해졌지만 우리는 산길을 내려가기로 했다. 혼자가 아니니 그 무엇이 뛰어나온다 해도 별 무서울 것 같지는 않다. 이 길 끝에 진부가 있다. 밤새 이 길을 걸으면 지치고 지쳐서 내일 아침 서울 행 버스에 올라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이 여행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니, 어둠 속 한 걸음 한 걸음이 아쉽고 애틋하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냉소적이고 무력한 사람이다. 어디선가 거대하고 멋진 혜성이 지구로 정면 돌진한다 해도 환영할 것이다. 하지만 냉소는 세상에 대한 나의 불화감를 인정받으려는 또 다른 얼굴일지도 모르겠다. 내 거친 말들로 일갈했던 것들을 부끄럽게 여긴다. 이제는 아무런 항변 없이 그저 조용히, 내 삶으로부터 세상의 인정을 밀어내고 싶다. 그리고 다시금 지그시 바라보고 싶다. 세상에 태어나 늘 바보같이 살아왔다. 매사에 한 번씩만 속으면 충분할 거 같은데 나는 두 번도 속고 세 번도 속았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뜻밖에도 그것이 나라는 이의 유일한 희망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걸었던 길들에게 감사한다. 늘 오가는 계절이지만 걷는 동안 계절이 깊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