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봄


해질녘쯤  봄똥 두 포기와 돼지고기 전지살을 사서 식당으로 갔다. 오늘은 손님으로 찾은 게 아니고 주인양반과 지인들 몇이서 저녁이나 해먹자기에 들른 자리였다. 테이블에는 아직 두 팀의 손님이 남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부엌 쪽을 들여다보니 이미 새콤해 뵈는 무생채와 냉이국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제 봄똥을 씻고 준비된 양념을 끼얹어 제육볶음만 하면 될 터였다. 좀 도울까 하고 부엌으로 들어서는데 테이블에 앉아있던 예쁜 아가씨 한 분이 나를 보고는 선생님, 하며 벌떡 일어선다. 가만히 보니 십여 년 전에 내가 가르쳤던 학생이다. 근처에서 큐레이터 한다는 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던 참이라고 했다. 문과였는데 어찌 어찌 미대에 가서 그림 그리게 되었다고 했다. 조만간 전시가 있다며 갤러리 옆서 한 장을 큰 가방에서 꺼내주었다. 부지런히 작업하며 사는 젊음이 좋아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지난 이야기들을 한참 했다. 그림 그리다 영혼에 얼룩 지면 가끔 놀러와라 하이타이로 빨아줄께 하는 식의 실없는 말만 건넸지만 이제 선생이 아닌지라 예전보다 더 격식 없고 유쾌했다. 반가워서 그랬는지 목소리도 커지고 크게 웃었다. 그러다 옆에는 아직 식사 중인 다른 손님과 눈이 마주쳤는데 조금 무안했다. 그 테이블에는 스님이 한 분 계셨는데 담박하게 늙은 촌부 같은 얼굴에 털털한 미소를 지어주고 계셨다.
창밖이 깜깜해지자 제자였던 아가씨도 가고 스님도 갔다. 그제서야 우리 일행은 봄똥과 무생채와 제육볶음과 냉이 된장국을 먹었다. 봄것들이 많아 그런지 기막히게 맛있는 저녁이었다. 평소에는 하지도 않는 반주도 몇 잔 했다. 산사춘으로.

여보게, 오늘의 예쁜 아가씨들도 봄이지만 그걸 보던 촌로 같던 스님의 눈빛도 봄이로고.  봄은 마치 경쾌하게 살아있는 이들을 바라보는 죽음 가까운 쪽 시선 같아, 뿌리가 없는 듯 홀가분하면서도 소외된 듯 쓸쓸한 계절이지. 세상은 좆나 일하는데 당신네 회사만 쉬는 날이 있어 혼자 도심을 걸어본 적 있다면 당신도 그 기분 좀 알겠지.  

저 사진 속 풍경처럼,
공원에 소풍 나와 맛나게 밥 먹는 중생들 바라보는 부처님 눈빛이 바로 봄인 게지.      
저 양반 등 뒤로 살짜기 걸어 들어가 쓸쓸한 등짝이라도 좀 긁어드리고 싶다.                    

 quality sho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