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생활자

 

 

이런 원고청탁이나 들어오고 정말이지 나는 있으나 없으나 한 사람인 게 분명한 거 같다. 말하자면 나는 가스 불을 끄고도 아직 남아있는 프라이팬의 여열이고, 바람이 지나간 뒤에 펄럭이는 검은 비니루 봉다리고, 공터 한 귀퉁이에서 홀로 자라서 저 홀로 무성해졌다가 사라지는 잡초 같은 인생이다. 지인들이 그나마 나를 찾아올 때는 직장을 그만두고 싶을 때나 이혼 직전이다. 스스로 사회의 잉여 혹은 사랑의 잉여가 되기 직전에나 가끔 나를 찾아온다. 그 자리에서 나는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열심히 한다. 예 예....그만 두세요 이혼하세요.

 

그러면 그들은 뜬금없이 슬픈 표정을 지으며 이리 말하곤 한다. 햇살 참 좋네요. 이렇게 아무 할 일 없이 있어보기도 참 오랜만이네요. 그리고는 이내 자신이 그간 얼마나 성실하게 살아왔는가에 대해 깊은 회한에 빠진다. 그 사이 사이 나는 계속 열심히 이야기한다. 예 예...그만 두세요 이혼하세요. 그들은 그렇게 나와 반나절을 보내고 귀가해서는 좋은 남편과 아내가 되기 위해 다시 노력하고 직장에 가서 열심히 일한다. 나는 가끔씩 내 인생이 다른 이들의 유원지가 아닌가 싶다. 그것도 입장료가 없는 공터 같은 유원지. 그들이 떠난 사이에 나는 공터가 여전히 공터일 수 있도록 가끔씩 빗질을 하고 흩어진 쓰레기를 줍는다. 그러다 멍하니 지는 노을을 바라본다.

세상의 아무것도 아닌 이 느낌,

적지 않게 평화롭다.

 

한데 내 인생은 김밥 꽁다리를 메인 김밥보다 더 탐내는 사람들 탓에 이상하게 흘러왔다. 여행의 감각으로 한 생을 소비하던 나의 희한한 인생을 세상이 사주어서 그럭저럭 굶지 않고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이 사회에서는 김밥 꽁다리 신세다. 세상 사람들은 내 인생을 자기 식대로 인정해주면서 나를 묘하게 소외시킨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아무도 먹지 못할 돌덩이 같은 찬밥이 낫지 싶다. 그래서,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이 세계가 익숙한 이들에게 솔찬히 불편한 존재가 되고 싶다. 내 생활의 내용은 별 변화가 없지만, 언제부터인가 방송활동도 끊고 책 쓰는 일도 접었더니 나는 다시금 팔리지 않는 잉여가 되었다.

 

노동자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생산물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노동 이상으로 하는 노동이 잉여노동이다. 그리고 그 잉여노동이 자본주의의 상품과 서비스를 만든다. 말하자면 세상이 통째로 잉여에 몸 바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잉여의 세상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잉여의 존재로 사는 것이, 그나마 잉여의 운명을 조금이나마 줄이는 방편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날이 따뜻하니 보일러 기름 값 걱정도 없고, 공터에 뿌려둔 상추와 쑥갓이 북북 자라난다. 가난해서 이제 후배들에게 밥도 한 끼 못 사주고 땡전 한 푼 없지만, 올여름에는 저걸 다 뜯어 먹고 해바라기처럼 건강해질 것도 같다. 잉여생활자인 나는 잉여가 없어서 이토록 살뜰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