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배수로 청소


해마다 봄맞이 하는 마음으로 집 뒤 배수로를 치운다. 한사람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곳이지만, 겨우내 옹벽에서 부서져내린 토사들과 바람에 날아온 낙옆들이 복숭아뼈를 넘는다. 머리 위에서는 아까시나무 가지들이 뻗어내렸는데 사납기가 독사 같다. 톱으로 가지들을 정리하고 안쪽부터 삽질을 시작한다.  하지만 1 미터만 전진해도 삽이 안 들어갈 만큼 쌓여버린다. 중간쯤부터는 삽 한 자루 쓰기도 좁은 곳이라 손으로 양동이에 퍼담아 마당에 내다 뿌린다. 그렇게 몇 십번을 왔다 갔다 했을까. 마지막 흙을 마당에 뿌리고 담배를 꺼내물자니 팔이 후달거리고 하늘이 노랗다. 몸이 허해졌나? 여느 해 봄맞이 같지가 않다. 일을 마치고 삼겹살을 먹으로 갔다. 용달 일 하는 양반들이 자주 가는 함바집인데 설렁설렁 썰어진 삼겹살이 반짝이는 스텐 쟁반 위에 떡, 하고 담겨 나왔다. 분홍빛 고기가 이리 말하는 거 같았다. 너 나 먹고 싶었냐? 죽은 이의 목소리 같다. 나는  대답 없이 기름장도 찍어 먹고 된장도 찍어먹었다. 

배탈이 나서 며칠 고생하고 났더니 이제 꽃샘추위도 끝나간다. 마당의 돌멩이들을 걷어내고 씨들 좀 뿌려야겠다. 혹 상추 구제역 같은 건 안 생기겠지? 그나저나 채소들도 참 희한하지 누군가에게 다 뜯어먹힐 걸 뭐하러 그리 열심히 산담. 하긴 우리도 열심히 살지. 다 뜯어먹히다 왜 그래야는지도 모르게 꽃 피고 맺힌 씨앗 같은 세상의 아이들은 또 그렇게 자라나겠지.

하지만 말을 말자. 이런 거친 말로는 짚어볼 수 없는 세상의 세세한 결들을 보자. 그 결 중에 하나만 제대로 마주쳐도 울고 웃고  좆뺑이 까며 일생을 다 살 수 있을 텐데 우리는 늘 걱정이 많고 용기가 부족하지. 이제 저 남녘에는 버드나무 가지에 새 잎 돋고 있겠구나. 어느 이파리보다 일찍 나와서 가장 늦게까지 바람에 나풀거리는 그 여린 잎이 벌써 눈에 보이네.


the wicked f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