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 가을


 



저 노란 빛. 이 생에서 나는 몇 번 죽었던 걸까.

그대가 쓰다듬었던 내 머리칼 중에 하나를 뽑아 술로 담가두고 싶은 가을 오후
나는 술 대신 차를 마셨지.



생애전환기 건강검진 통지서를 가지고 병원에 가서는
쓰러진 말처럼 엎드려 비수면으로 위내시경 검사를 했지
왝왝대며 내 속을 들여다보며 눈물 흘렸네



병원을 나와 동네 세탁소 앞을 지날 때
세상에 스끼는 햇살을 몇 줄 보았네
태어난 김에 한 번 더 환하게 속고 싶은 기분이 들었지.



1Q84 3권에서 읽은 글자들 몇이 기억나더군.



잠을 이룰 수 없어 한밤중에 산책을 했지.
이미 문 닫은 술집의 두 의자
그 중 하나는 혹 이런 소리를 하고 있더군.

"내가 뒈져도 너는 혼자 두지 않을께."

내 애인이었다면 나는 이런 대답을 해줬을 거다.

"그대도 한 잔 해라. 비 내리는 밤, 은행잎 노란 빛도 이제 끝이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지.

내 불안과 어둠에서 걸어나오면
한번 더 너를 안아줘야지, 그리고 한번 더 쓰다듬어 주고, 한번 더 입 맞춰야지.
내가 감았던 눈만 뜨면, 너는 내 앞에 있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