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속 71km보다 빨리 멀어진 은하 씨에게


 

며칠 전 신문에서 우주에 관한 쓸쓸한 기사를 봤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너를 간만에 떠올렸다. 한때 너는 나와 아주 가깝게 있었다. 영혼을 닿고 있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우리는 피부를 닿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너를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는 우주의 작은 비밀이었기에 세상에는 우리의 시절을 증명해 줄 아무도 없다. 그리고 너의 소식을 전해줄 이도 없다. 뉴스에 의하면, 지난해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브라이언 슈미트 교수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28차 국제천문학연합회(IAU) 총회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인류는 우주에서 또 다른 생명을 찾고자 하지만 외로움만 커질 것입니다.”

 

137억 년 전 빅뱅(대폭발) 이후 우주는 계속 팽창했다. 20세기만 해도 과학계에선 우주의 팽창속도가 점차 느려질 거라고 내다봤다. 우주에 널리 흩어진 수천 억 개의 은하가 서로를 잡아당긴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8년 슈미트 교수를 포함해 미국 버클리캘리포니아대 사울 펄무터 교수, 미국 존스홉킨스대 애덤 리스 교수 등 3명은 정반대 주장을 내놨다. 우주를 채우고 있는 암흑 에너지로 인해 우주의 팽창속도가 계속 빨라지고 있다는 연구결과였다. 우주의 가속팽창을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들 3명은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과학적 측정 결과에 의하면 현재 우주의 팽창속도는 초속 71. 한데 우주의 팽창 속도가 점점 빨라지다가 보면 언젠가는 광속(초속 30)보다 더 빨라지는 날이 올 것이라 한다. 슈미트 교수는 그 순간을 주목해서 말하고 있었다. 그때가 되면 다른 은하에서 나온 빛은 지구에 도달하지 못한다. 다른 은하에서 지구를 향해 오는 빛의 속도보다 서로가 멀어지는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은하에서 온 그 어떤 빛도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가령 우리 은하 중심에서 2,174떨어진 안드로메다 은하에서 지구까지 빛이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250만년 걸린다. 방금 관측한 안드로메다 은하는 250만 년 전 모습이란 얘기는 익히 들어서 이제는 상식이 된 이야기다. 하지만 이 은하에서 나온 빛의 속도보다, 우주 팽창으로 우리 은하와 안드로메다 은하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는 속도가 더 빨라지면, 빛은 지구에 도달하지 못하고 결국 지구인은 영영 안드로메다 은하를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학계에선 우주 팽창으로 우주가 서서히 생명력을 잃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우주의 평균온도는 영하 273. 빅뱅 직후에는 이보다 높았지만 우주가 팽창하면서 서서히 온도가 떨어졌다. 앞으로도 계속 낮아질 전망이다. 온도가 높다는 건 에너지를 많이 가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주는 서서히 식어가고 별은 점차 빛을 내지 않으면서 나중엔 아무런 활동도 없는 곳이 될 것이고 한다.

 

돌아보면 너를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가만히만 있어도 점점 서로 가까워졌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함께 했던 그 시절은 우주의 오류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너와 내가 만나 환하게 빛을 발하던 그 시절이 지나고, 언제부턴가 우리는 점점 멀어졌다. 제 아무리 발버둥 쳐도 우리는 점점 멀어졌다. 그러다가 가만히 있었더니 너는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다시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나는 오랜만에 문득 그대를 거짓말처럼 떠올려봤지만, 그리고 그대에게 끝내 들려주지 못했던 그 어떤 노래를 떠올려냈지만, 너의 빛은 이제 나에게 도달할 수 없다. 너는 이 우주의 어디쯤에 있겠지만 나는 너를 느낄 수조차 없게 된 것이다.

 

너도 그러는가? 나를 느끼는 마음보다 나를 잊는 속도가 더 빨랐나? 그래서 나를 볼 수 없는 건가?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너는 여전히 어디선가 나를 볼 수 있는지도. 혹여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어디로 너를 찾아가야 하는 걸까. 아니 어떻게 해야 너를 볼 수 있을까. 우리가 멀어지는 속도를 추월해서 그 속도보다 더 빠르게 너를 그리워한다면, 나는 다시 너를 느낄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상념들이 부끄럽다. 너를 그리워하지 않고도 살 수 있게 된 사람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너를 볼 수 없는 이 지경까지 이르렀을까.

 

은하씨, 어디선가 나를 볼 수 있거든

너를 볼 수 없는 나를 위해 눈물 흘리지 마오.

우리가 잡았던 서로의 손이 떨어지던 그날 밤 그 순간부터

세상의 시절은 서둘러 흘러갔고

죽어도 너를 사랑하지 않게 되고서야 죽겠다던 그 시절도 이젠 흘러갔고

이제는 다만 이렇게, 너에게 보내는 노래

아니, 너를 부르는 노래를 간신히 떠올리네.

 

슈미트 교수에 의하면, 인류는 조만간 그러니까 1000억 년 쯤 후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우주와 마주하게 된다더군. 충격적인 일이지만 어쩌면 인류는 그때 별로 슬퍼하지 않을지도 몰라. 많은 이들이 우리처럼 이미 다 겪어본 일들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