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 없이 뚫린 입들

 

 

그것을 반짝, 했다고 말해도 될까? 아니지 그건 차라리 도시의 북새통을 지나는 어느 열외자의 눈빛 같은 거였다. 그렇게 별 하나가 밤하늘을 가르고 사라졌다. 저열한 방법으로 상처를 남기는 사람들은 세상에 여전히 건재했고, 어쩌면 세상은 그 상처로 더욱 더 견고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어느 여름밤이었다. 영화관에서는 세상으로부터 오해와 수모를 겪은 배트맨이 나와서 이 세속에서 풍기는 고난의 뉘앙스를 살짝 풍기긴 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뚫린 입이라고 다 말하는 그런 수준이라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역시 예의 없이 뚫린 구멍을 통해 이 세상으로 나왔다. 하지만 그 구멍은 예의 없이 뚫린 입들처럼 그 구멍으로 뭘 먹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그가 돌아갈 구멍은 이제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시작이란 것은 늘 폭력이고, 시작의 기원은 전해지는 것과는 다른 사정이 있기 마련이다. 세상에 거짓말쟁이들이 많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제 속의 진정성이나 믿는 예의 없이 뚫린 입들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방금 전에 보았던 별똥별의 여운을 느껴보려고 가던 길을 멈추었다. 하지만 문득 외로움이 느껴졌다. 세상의 외로움에는 늘 열패감 같은 것이 끼어들기 마련이다. 그건 경쟁에 진 그런 느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판정이 옳지 않았음을 느끼는 수치심 같은 것이었다.

 

아무 때고 틈만 나면 뚫린 입들은 자신의 진심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들은 어쩌면 모르는 것 같다. 자신의 진심이란 것이 이미 너무 연극적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을. 그들은 대개 자신의 마음을 맹신하지만 스스로가 그 진심과 얼마나 다른 인간인지는 모르는 눈치였다. 그들은 대개 모르는 것도 없고 본 것도 많아서 세상의 갖가지 감각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이런 저런 인용을 하고 무엇은 어떻고 또 누구는 어떻다고 뚫린 입으로 세상을 다 말하지만, 막상 자신은 빠져있고 그 판단기준의 출처에 대해서는 별 의심이 없었다.

 

그가 사는 동네에는 최근 급작스레 유명세를 타고 있는 사립 미술관이 있다. 그곳은 1년에 며칠 일반인 관람을 허용한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벌떼처럼 밀려왔다. 관람객 줄이 끊이지 않고 백여 미터에 이른다. 그들이 꼭 보려는 것은 신윤복의 미인도였다. 그 시기에는 공연히 그 근처의 커피 집만 대박이 나곤 했다. 주변의 상가시세도 올랐고 권리금도 올랐다. 어느 순간 대중에게 인정받은 가치는 이제 더 이상의 의미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아름다운 무엇이었다. 그들은 그런 아름다움들을 퍽도 많이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탐하는 것들을 독특한 무엇으로 여기는 눈치였지만, 그가 보기에는 화장실 변기 앞에 붙어 있는 문구들과 별 다를 게 없었다. 세상을 꽉 채우고 있는 인생의 충고들은 대개 그렇게 스스로의 근거를 일찌감치 잃은 문구들이다.

 

예의 없이 뚫린 입들이 이런 저런 옳은 소리들을 하는 동안, 그는 한평생 헛소리를 하며 살아왔다. 그래도 뚫린 입들이 주장하는 진심과 천박한 고급취향에 비하면 차라리 그게 그나마 자신을 좀 편하게 해줬다. 그가 생각하기에 진심이란, 말로 되어 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진심이 없다는 마음으로 뒤뚱뒤뚱 세상의 오해와 거짓들을 상대하며 방향 없이 헤매는 것이 그가 아는 인생살이였다. 그러면서 블랙홀처럼 아득하게 멀어져가는 제 진심의 영역을 멍청하게 바라보거나 하는 것이다. 공연히 그 근처에 갔다가는 깜깜한 그 암흑에 빨려들어 모든 의미들은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아니 그 괴물 같은 블랙홀을 더 키우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 세상의 뚫린 입들은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그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고 싶어 안달이 난 것 같았다. 그 진심의 블랙홀마저 없다면 자신이 믿을 구석은 하나도 없다는 듯이.

 

그가 사는 나라의 여름은 점점 더워지고 있었다. 한때는 여름밤이면 선선한 바람이 불기도 해서 광폭한 낮 시간을 잠시 비웃어보기도 했지만, 이제는 여름밤도 더 이상 세상의 여백이 아니었다. 예의 없이 뚫린 입들 몇이 세상의 여백에 잠입한 이후로, 그들은 늘 여백의 공기들을 세상에 내다 팔기 시작했다. 그들은 가끔씩 세상을 못 견디고 가끔씩 세상을 못마땅해 했지만, 이 여백을 조금이라도 예쁘게 포장해서는 세상에 내다팔아 하루빨리 세상 속으로 편입하고 싶어 했다.

 

별똥별의 여운은 여전히 그의 마음속에서 잔잔하게 울려왔지만, 그는 자신이 느끼는 세상과의 이 오래된 불화감이란 게 어쩌면 자신의 거대한 착각상태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이 여름밤을 떠나야할 것은 어쩌면 자기 자신이었다. 예의 없이 뚫린 입들의 한심한 진심을 제 뚫린 입의 헛소리로 끝없이 무마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 어디로 간단 말인가. 세상에서 사라진 모든 것들은 자신이 지나간 그 문을 열어두지 않는다. 도대체 누가 자신을 함구하고 세상을 함구할 수 있을까? 그는 몸소 자신이 사라질 문이 되어야 한다는 기이한 의욕에 기대에 간신히 지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이곳이 아닌 그 어딘가로 걷기 시작했다. 그것은 반짝, 하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