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위시리스트


해마다 가을이면 알 수 없는 우울이 찾아오곤 했는데 그것은 어쩌면 겨울나기에 관한 걱정 아니었나 싶다. 나는 오래 가난했다. 한데 재작년과 작년에는 여러 차례 TV 여행프로그램에 출연해서 기름통에 기름을 넉넉히 채웠다. 대신 자주 여행 아닌 여행을 나가야 했고 점점 생활의 감각을 잃어가고 있었다. 다시 아무 것도 안 하고 살아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던 일들을 접었다. 24시간을 온전히 스스로 운용하며 잃어진 내 인생의 진도들을 살펴보고 있다. 나는 다시 소득 없이 산다. 그런 즈음 PAPER 정유희한테서 전화가 왔다. 욕망의 위시 리스트를 적어달라고. 나는 별 원하는 게 없다고 거절했다. 그러자 유희는 말도 안 된다며, 그럼 스스로를 욕망 없다 착각하고 있는 한 사내의 숨겨진 위시리스트를 보내달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야야, 네가 보고 싶어 하는 나의 이면이 바로 네 년의 욕망이야.’ 하지만 어찌 사람이 욕망이 없겠는가. 씁쓸히 승복했다.

대학 졸업하고 꽃게잡이 배를 탔던 적이 있다. 먼 바다로 나가는 원양어선을 타려했지만 직업소개소에서 만난 선장 마누라의 끈질긴 제안을 뿌리치지 못하고 따라간 곳이 서해안 덕적도였다. 일은 엄청 고되고 힘들었다. 악명 높던 새우잡이 배에 끌려간 사람들을 되레 부러워했다. 게다가 우리 배에 탄 선원들은 유독 일이 굼떴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지난 해 이 배에서 건빵 한 봉지를 사이에 두고 칼부림이 일어났던 터라 선장 마누라는 일 잘 하게 생긴 사람은 뒤로 재껴두고 일단 순하게 생긴 사람들 위주로 뽑아 온 것이었다. 정말이지 다 순했다. 고작해야 신용카드 사기범이나 강간미수 뭐 이런 죄목으로 감옥 갔다 온 치들이었다. 다른 배는 밤 10시쯤이면 일이 끝나는데 우리 배는 늘 자정을 넘겨서 간신히 그물 정리가 마무리 되곤 했다. 그때라야 선실로 내려갈 수 있었다. 캐시미어 담요를 흉내 낸 화학섬유 담요들은 늘 짠물이 스며들어 눅눅하게 젖어있었지만 피던 담배도 제대로 못 끄고 그 자리에서 바로들 쓰러져 잠들었다.

매일매일 꼭두새벽에 일어났다. 전날 정리해둔 그물들은 만만의 준비가 된 채로 선상 가득 늘어선다. 배는 그물을 뿌릴 곳으로 전속력 질주한다. 새벽 바닷바람은 살을 애일 듯하다. 모두들 이를 닥닥거리며 갑판 한 구석에 굼벵이들처럼 붙어있다. 그때였다. 같은 선단에 있는 배 하나가 우리 배 옆으로 바짝 다가왔다. 선장끼리 조종실 창문을 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댄다. 바람이 거세서 하나도 못 알아들을 소리들이다. 그러는 사이 우리들은 일제히 한 곳을 쳐다보게 되었다. 그날따라 파도가 높아 유독 배가 요동치는데도 옆 배의 난간에 웬 사내하나가 팔베개를 하고 여유자작 누워 있는 게 아닌가. 이건 어쩌면 굽이치는 월미도에서 바이킹 난간에 웬 또라이가 누워있는 형국인지라 우리 배의 초식동물 같은 순한 남자들은 그 포스만으로도 그만 잔뜩 기죽어버렸다.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저 인간 살인자라더라. 사람 죽이고 학교 갔다 온 지 얼마 안 됐다대.’ 우리는 그를 한참 봐라봤다. 그 배가 우리 배와 갈라지며 해가 막 떠오르는 붉은 바다로 점처럼 사라질 때까지 그는 미동도 없었다.

저녁이면 잡은 꽃게들을 그날그날 수합해서 실어내보내야 한다. 어업을 마친 선단의 배들은 바다의 어느 한 지점으로 모여든다. 그곳에서 모두들 꽃게들을 딴다. 잠시도 쉴 수 없다. 꽃게들을 수합해갈 배가 오기 전까지 꽃게들을 그물에서 떼어내서 바구니에 담지 못 하면 이후에 거둬들인 꽃게들은 똥값도 못 받을 쓰레기가 돼버리기 때문이다. 열나게 꽃게들을 따다가 끊어질 듯한 허리를 한번 펴면 이상하게 그때마다 그 살인자와 눈이 마주치곤 했다. 어깨가 딱 벌어지고 시퍼런 문신이 팔뚝에 가득하다. 그는 한 눈에 봐도 뱃일이 몸에 밴 사람이다. 어수룩한 우리 배 사람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특히나 매일 아침 시뻘건 일출 속에서 그가 보일 때마다 우리는 모두 깨갱깨갱 하며 구석에 몰린 강아지들 같아져서는 눈을 돌렸다. 그러든 말든 그는 여전히 미동도 없이 난간에 누워 있었지만, 혹여 재수 없게 걸리기라도 하면 추위에 벌벌 떨던 강아지들은 한입에 물려 공중에 휘저어지다가 얼음같이 차가운 바다로 내팽개쳐질 일이었다.

꽃게잡이 철이 끝나갈 때 들었는데 그는 그 배의 누구와도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시도 때도 없이 허무하지만 고작 유순한 탓에, 마음 따뜻하기 대회에 나가면 늘 1, 2등 할 수밖에 없는 나는 요즘 들어 그가 문득 문득 떠오른다. 이렇게 그리울 거였으면, 그가 배 난간에 누워있을 때 그 옆으로 저벅저벅 걸어가서 잠깐 눈 마주치고는 그가 주먹을 날리기 전에 그의 한 쪽 팔을 빼내서 그 팔을 베고 나란히 누워볼 걸 그랬나 싶다. 한데 막상 나는 그의 면상이 기억나지 않는다. 코앞에서 마주쳐도 못 알아볼 것이다. 그럼 나는 뭘 기억하고 있는 걸까? 우리가 자주 굴복하고 마는 인정이나 윤리 혹은 그 어떤 휴머니즘의 명분도 감히 그의 코털 하나 건드리지 못할 것 같던 살인자, 그가 펼쳐보이던 거대한 미궁의 영역, 말하자면, 그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기, 끝내 침묵하기. 그리고 야수 같은 삶, 그런 것일까.

야생이 그리운 건지 혹은 고독한 야수의 곁을 지켜보는 어느 눈 맑은 소년이 되고 싶은 건지 아무튼 요새 나의 단 하나 위시리스트는, 망망대해로 출항하는 뱃전에 누워 거대한 허무의 파도에도 꿈쩍없던 바로 그 살인자 야수 놈의 팔베개다.

오! 이것은 또 어떤 거대한 허영의 처참한 위시리스트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