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작농 아이들

 
현승이와 욱이는 한 살 터울 형제입니다. 둘은 늘 함께 하지요. 세상에서 가장 친한 형제입니다. 오늘은 엄마가 혼자서 인도 여행을 떠났습니다. 덕분에 아빠랑만 몇 주를 지내게 됐습니다. 엄마는 난생 처음 출국이라 꽤 긴장하는 것 같았지요.

공항 갔다와서 아빠가 머리를 깎아줬습니다. 현승이는 짧은 머리를 싫어하지만 아빠가 깍자고 하니까 그냥 순순히 머리통을 대주었습니다. 예전에 아빠가 머리 갂다가 귀를 조금 잘라 피가 난 적도 있는데 말입니다. 그나저나 욱이는 뭐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길든 짧든 아무 상관이 없어요. 아빠는 욱이 머리를 자를 때가 한결 편합니다. 곱슬머리라 대충 깍아도 그냥저냥 땜빵이 됩니다. 둘이 합쳐서 머리카락이 한 솥은 나왔습니다. 욕실에는 웬 뚜껑 없는 낡은 솥이 놓여 있는데 거기 담으니 꽉 차더군요. 그 솥은 평소에는 걸레 빠는 그릇 정도 되나 봅니다. 하지만 현승이와 욱이는 엄마가 거기서 걸레 빠는 걸 본 적이 없대요. 도대체 거기 왜 그 솥이 있는지 알 수가 없어요.


깨끗이 씻고 수건으로 머리를 말려주니 현승이와 욱이는 시골아낙네 밭갈이 놀이를 합니다. 뭔 이런 놀이가 있냐고 물었더니 자신들이 만들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중간중간 유행가도 흥얼거려요. 티비도 없는데 그 노래는 어떻게 알았냐고 하니, 주워들었답니다. 주워들었는데 그리 잘 하냐고 하니, 원래 주워 듣는 게 더 잘 들린다고 합니다. 가수들이 부르는 건 알아듣기 힘들지만 친구들에게 주워들으면 쉽고 잘 들린다고요. 아빠도 세상 여기저기서 이것 저것 주워듣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한데 일하다 말고 새참을 달라는군요. 자신들은 지주에게 착취당하는 가난한 소작농이라면서 제발 맛있는 새참을 해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맹물 지주는 돼지고기를 삶기로 했습니다. 걸레 빠는 솥처럼 생겼지만 분명 다른 솥에 갖가지 향기로운 차를 넣고 삶습니다. 마늘, 생강, 대파 쪼가리도 넣지만, 조선간장도 꼭 넣어야 해요. 소작농들이 맛을 보더니 혀를 내두릅니다. 오향장육 맛이 납니다. 참기름과 새콤달콤 발사믹 소스를 곁들인 미나리 샐러드도 함께 냈지요. 이 형제는 예전부터 아빠는 식당을 해야 된다고 난리입니다. 

어여 자라 애들아, 내일도 아침 일찍 일어나 밭 갈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