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닦개 일동



 
 
아침부터 동네에 굴착기 소리가 한창이다. 뭔 일이라니, 엊그제 불 나서 성북구 종로구 소방차들 다 출동했었는데, 그 집 허물고 있나?
공연히 뜨끔하다.

이 집에 처음 이사 왔을 때였다.
집안에는 간이 전구 하나 밝혀놓고 한밤중까지 곰팡이 가득 핀 낡은 벽지들을 뜯었다 
집 안팎을 부지런히 오가며 폐벽지가 뜯어다가 마당에서 태웠다.
그때도 성북구 종로구 소방차 다 출동했었다.
완전 쫑크 먹고 개쪽 당했지. 소방관이 진술서 받아가면서 이렇게 묻더군. 국민학교는 나왔어요?
좌우지간 그날 동네분들 인사 다 나눴다.

왜 이 이야기를 하냐면 며칠 전에 우리 동네에서 불이 났기 때문이다. 그날 한밤중에 귀가하다가 우리집 방향에서 오르는 거대한 연기를 보고 화들짝 놀랬다. 막 달려와 보니, 아래 아래 집이었다. 그곳에 잠들었던 아가씨는 간신히 피했다고 한다. 옆집 꼬맹이들이 냄새 난다고 엄마를 깨웠다는데 그 덕에 인명사고는 없었다. 하지만 집이 활활 타서 폭싹 주저앉았다.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그래서 오늘 아침부터 들리는 굴착기 소리는 불 탄 집 허무는 소린가 했다. 밤샘 작업하고 아침녘에 잠들려하는데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빨래를 했다. 꼬랑내 나는 신발들과 발닦개들을 모조리 모아 빨고는 세탁기로 탈수를 시켰다. 탈수가 끝나기를 기다리다 깜박 잠들어버렸다. 얼마나 잤을까, 한두 시간? 눈이 하도 부셔서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가슴에 한 가득 빨래들을 안고 마당으로 나서는데, 야~ 오늘 볕 쥑이네. 마당 한켠 냉이꽃들이 무더기로 빛난다. 노란 놈도 있고, 하얀 놈도 있다. 신발과 발닦개들을 널다 말고, 꽃 핀 냉이가 비장에 좋다는 말이 퍼득 생각난다. 내 요새 비위가 약해져서 음식물 쓰레기만 봐도 토가 쏠리던데, 저거 캐서 말리는 부지런 좀 떨어볼까?  아는 행님이 신문 구독해서 받았다며 우리집에 놓고 간 자전거 아래 애기똥풀꽃도 한창이다. 너무 가파른 산동네에 살아서 자전거가 그 자리에 선 채로 망가졌다. 이제는 기름 칠해도 안 될 듯. 

그나저나 배가 너무 고프군. 나는 평상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네 발로 냉장고까지 기었다. 냉장고에는 어제 마당에서 캐서 손질해둔 그것들이 들어 있으니까. 뭐냐고? 질갱이! 어여 저걸 한 양푼 무쳐 먹고 병든 닭 신세를 면해야지. 질갱이를 무칠 때는 아무래도 억세니까 식초랑 간장 넣고 밑간을 조물조물 하다가 국물 찍 따라내고 무쳐야 한다. 양파 얇게 썰고 고추가루 고추장 적당히 넣고 버무리면, 향 좋고 씹는 맛 일품인 질갱이 겉절이가 된다. 이걸 이빨로 팍팍 씹으면 늙지도 않는다. 아구 힘이 좋아지잖아. 밥 할 힘은 없으니 햇반 두 개 데워서 하나는 흰밥으로 먹고 하나는 양푼에 쏟아서 비벼 먹어야지. 그리고 빈 그릇은 설거지통에 우당탕 던져놓고 어여 배불리 잠들어야겠다. 하지만  잠깐만 자야해.

발닦개들 뒤집어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