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엉덩이, 그리고 돌들의 가을볕

 

 



목석 같은 후배가
제 손을 펼치고는 이렇게 저렇게 뒤집으며 한참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뭐해?
이 걸 잘라서 어디 두고 보면 내 손인 줄 알아볼 수 있을까요?
......
모를 거 같아요.


나는 그의 골똘한 짓거리를 보다가 눈을 살짝 찡그렸다.


그제도 외박, 어제도 외박, 오늘도 외박.
매일매일 바뀌는 정처 없는 잠자리지만 눈을 뜰 때마다 가을볕이 눈부시던 어느 날이었다.

아남빌라 301호
현관문을 조금 열어두겠습니다. 방문도 열어두겠습니다.
벌거벗은 채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을께요.
엉덩이 부분만 내놓고요.
누구라도 오셔서 뭐든지 하고 가세요.

게이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라며 어떤 친구가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그 이야기가 인상 깊어서 서툰 영어로 어떤 여자에게 또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이야기를 다 듣고는 그 게이는 아마도 마음이 broken 된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자신의 상태를 한 줄로 써야 하는 메신저의 공란을 한참 바라보다가 나는 이렇게 썼다.
돌들에게 물어봐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까. 골똘한 짓을 하던 이의 메신저 상태란에 이런 글자들이 적혀있었다.
몽, 맷, 조약, 차, 짱, 아이

나도 퍼득 생각나는 게 있어 한 줄 문자를 보냈다
고인

오랜만에 집에 들어갔다. 
마당에서 담배를 피우다 말고
텃밭 한쪽에 가득 올라온 채 색이 바래고 있는 바질 잎들을 땄다.
말려서 올리브유에 담가둘까나.
필요할 때는 찔끔찔끔 나더니 밥 안 해먹는 요즘 지천으로 널렸다.
필요한 것들은 언제나 필요 없을 때 가득하다.
나는 다시 한번 더 눈을 찡그렸다.

세상은 포르노 아니면 유치한 멜로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지만
가을 볕은 조금의 추춤도 없이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