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고추와 노란 뽕나무





 

오랜만에 집에 들어오니

철 지나서 따지도 못 한 고추들이 붉게 달려있다.

뽕나무 잎은 얼룩도 없는 환한 노란 빛이 되었구나.

저 노란 빛을 보고 있자니

홀로서 아껴 걷던, 지리산 자락 두충나무 숲이 생각난다.

한때는 두충차가 인기 있어서 많이들 심었지만

이제는 돈 안 되는 나무라 어쩌면 다 베어냈을지도 모르겠다.

기억에서만 살아있는 것들이 늘어 간다.














따 봐야 먹을 수도 없는 이지러진 고추 몇만 이제 마당에 남았는데

붉은 웃옷을 입은 친구가 휴일이라고 집에 놀러왔다.

저 친구는 이십대 때 서울에 와서

거의 모든 밥을 김밥천국에서 먹었다고 했다.



나는 맛있는 밥을 많이 먹고 살았다.




우리 동네 좁은 골목길들을 내려다보다 말고 그가 말을 꺼냈다.

어려서 학교 가다가 똥지게 아저씨와 골목길에서 마주쳤다고.

그래서 담벼락에 찰떡처럼 쩍 붙어서 길을 비켜주었다지.

똥지게 아저씨가 각을 90도 틀어서 그의 면상을 빤히 바라보며 지나갔단다.

한데 다시 자세 잡다가 그의 웃옷에 똥국물을 쓱~ 묻히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갔다지.

 학교 가다 말고 엉엉 울면서 집으로 갔단다.




오늘 딴 고추를 넣고

맹물네 특선, 죽방멸치파 스파게티를 했다.

김밥천국 밥만 먹던 친구가 맛있다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뭐래? 지가 뭔 맛을 안다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