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추억





당신의 사랑을 찔러 본 적이 있어? 천만이겠지. 찔러 죽이긴 커녕 끝끝내 열심이었겠지. 눈물 흘리고 피 흘리고 오래오래 처참해 보긴 했겠지. 그래, 그래서 당신이 아직 어린애인 거야. 당신같은 이와는 하찮은 연애질도 해볼 수 없지. 자신의 사랑을 죽여보지 않고서 어찌 그대가 그대 사랑의 허위를 눈치채 볼 기회나 있었겠나. 사랑하는 이를 죽인다는 건 자신을 죽이는 일이지. 그렇게 말해야 그대가 납득하겠지만, 사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자신의 생각을 죽여보는 것, 그것이 희한하게도 자신을 죽이는 일이란 말이지.우리는 그만큼 사랑에 오염되어 있다구. 인어공주가 왕자와 사랑할 수 없는 거, 그걸 봐봐. 왕자는 인어 따위와 연애할 턱이 없지. 좆도 모르는 애송이니까. 인어공주는 왕자를 죽이지 못한 게 아니지. 자신을 죽이지 못한 것이야.  다리를 얻는라, 꼬리를 포기하고 목소리를 버렸던 제 희생의 기억을 저질 페르몬처럼 뚝뚝 흘리고 다니는 잡것이지. 자식을 사랑한다고 귀찮게 고백하는 부모들도 그런 류다. 내가 아는 누군가는 학창시절에 장애인 친구를 사귀었던 적 있다더라. 소아마비였는데 하교길에 늘 가방을 대신 들어줬다더군. 한데 친구라는 이유로 기묘하게 구속하기 시작하더라는 거야. 그래서 학년 바뀌면서 간신을 떼어놨다더군. 사람들은 언제고 누군가를 만나게 되지. 그게 누구나 아는  시작이야. 하지만 무슨 사이가 되는 순간 그때부터 우리가 봐야하는 건 상대가 아니고 제 욕망의 진창이지. 그럴 때는 조금도 주저할 게 없어. 그냥 끝내버리는 거야. 그런 관계 속에 끝없이 끌려다녀봤자 개선의 여지는 있기 어렵다는 걸 이젠 좀 알겠어. 차라리 상대가 자신을 확 찔러 죽이도록 기회를 제공해주라고. 그건 일종의 위자료 같은 것이니까.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죽여봐야, 그 사람도 좀 제대로 죽고 사람답게 살아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마지막까지 결코 사랑한다는 말을 할 일 없는 그런 사랑을 만나기 전까지는, 끝없이 잘못 만나서 그렇게 매번 상대를 위해 죽어주자구. 어쩌면 이것은 사랑의 전도사들이 할 일이지. 하지만 부끄러운 고백을 해야겠군. 나도 여직 내 사랑을 죽여본 적이 없다. 나를 죽이고 간 사람들을 어쩌다 우연히 마주치면 그들은 이제 어른이 되어 있더군. 여직 나만 어린애야. 한데 이젠 찔리지도 못하는 이상야릇한 괴물이 된 거 같기도 해. 찔려도 찔리지 않는 건 사람이 아니지. 그건 귀신이거나 유령이거나 아님 천사이거나 하겠지만 모쪼록 이생에서 살아있는 그런 느낌은 아니야. 아! 나도 잔혹한 살인의 추억 하나 챙겨서는 이 긴긴 죽음에서 이젠 깨어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