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주인


 
좀 다른 의미가 되겠지만, 어쩌면 끝내 기억하는 이가 시간의 승자 아닌가 싶다. 옳고 그름이란 것도 어쩌면 기억하는 자의 것. 여전히 그 시간에 욕망이 있는 이여 그대가 오래토록 기억하라. 나는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났지. 절대 울지 않았고 대신 며칠 동안 잠도 안 자고 쓰러질  때까지 혼자 발작은 해봤지. 그리고 텅 비어 버렸어. 그래서 꽤 오래 나는 저절로 살아져 버렸지. 계절이 몇 번 바뀌었을까. 잊혀지진 않겠지만 나는 잊었어. 그렇다고 행복하려고 그걸 잊은 건 아니다. 세상에 널린 행복하지 못 해 안달 난 인간들아, 너희는 그냥 행복하게 살아. 그러면 되잖아. 왜 그것도 못 하고 이리 시끄러우냐. 그리고 끝내 기억하는 이여, 이제 세상에 우리가 겪은 사건은 없다. 사건을 기억하는 그대가 그 시간의 주인을 해라. 시간을 기억한다는 것은 시간을 왜곡한다는 것의 다른 말임을 그대의 채울 수 없는 욕망이 언젠가는 깨우치겠지만, 그대는 그 뼈 아픈 후회마저 또 어딘가에 인정 받고 싶어하겠지. 그래, 그대가 윈. 그리고 덧붙여 루저들이 있지. 내가 아는 루저들은 뜻밖에 능력자들이던데, 정말이지 이 세상의 루저란 능력 없는 자들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그 능력을 실현시킬 수가 없는 이들이다. 그러니 당연 세상의 패자겠지만, 세상의 루저가 말하는 세상이란 도대체 어떤 세상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승자의 세상을 자기가 사는 세상이라고 여기는 것이 루저들의 이야기가 되는가. 야심한 밤 나는 개주인이 잠든 개집 앞을 지나 기억이란 것이 없는 깜깜한 곳으로 간다. 그곳에서 기억 없고 이름 없는 것들을 만나기도 하겠지. 하지만 난 기억하지 않을 거야. 멕시코 원주민들은 태평양을 기억이 없는 곳이라 불렀다던데. 나는 이 세상을 기억이 없는 곳이라 불러야겠다. 자고로 기억은 일렁이는 파도처럼 가물가물한 것이라 했어. 선명한 그대의 기억은 아무래도 기억 아닌 무엇이지 싶다. 언젠가 그대의 세상이 거울 깨지듯 쨍!하고 깨지면 부디 그때 날 찾지는 말아줘. 용서는 없다. 기억이 없으니.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