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방 환영

 
잔설이 달빛에 환하군요. 묽게 된장국을 끓였더니 그 사람 생각이 나네요. 그는 이리저리 걷고 있었어요. 추운데 어디도 갈 곳이 없었지요. 사랑은 알 수 없는 것이지만 그는 그런 말을 몰랐지요. 아무도 그에게 밥을 차려 줄 수 없었고 잠자리를 내줄 수도 없었습니다.  그가 배고프다는 것은 사랑하는 이와 밥을 먹기 직전이고, 잘 곳이 없으면 사랑하는 사람 곁에서 잠들기 직전이었으니까요. 모든 것은 목전에서 단 한 걸음 남겨두고 사라지는 법이지만 그는 이런 말도 밀쳐두고 살았지요.
경기도 어디 쪽이라 들었습니다. 달방환영이란 간판이 붙은 곳 말입니다. 그는 이제 그곳에 삽니다. 달빛 비치는 신비한 환영의 방이 아니고, 월세 내고 한 달을 사는 여관방입니다. 정처없이 떠돌던 그는 그곳에서 환영을 받았지요. 이제는 그곳에서 잠을 자고 세면대 바로 옆에 있는 낮은 수돗가에서 밥을 해먹고 삽니다. 그곳에도 오늘 달빛 비치는가요? 그렇다면 그는 아픈 내 청춘이거나 당신의 낭만이거나 하겠지요.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환영 같네요. 예 환영 맞을 겁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된장국은 가져다 줄 곳이 없는 저녁이니까요. 

prev 1 ··· 113 114 115 116 117 118 119 ··· 123 next